1. 무단 통치와 토지 조사 사업
1) 무단 통치 (1910년대)
조선 총독부: 일제 식민 통치의 중추 기관, 일본 군인 중에서 총독이 임명되었으며, 식민 통치의 전권을 행사함.
무단 통치 내용
헌병 경찰 통치: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는 물론 거의 모든 행정 분야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함, 즉결 처분권을 행사해 독립운동가를 색출하고 처벌, 처단함
조선 태형령: 조선인에게만 재판 없이 태형을 가할 수 있는 조선 태형령 제정
공포 분위기 조성: 일반 관리는 물론 교사도 제복을 입고 칼을 차고 수업을 진행함
교육규제:
제1차 조선 교육령(1911)-조선인의 교육을 보통, 실업, 전문 교육으로만 한정, 보통학교 수업 연한을 6년인 일본에 비해 짧은 4년으로 함.
서당규제(1918)-개량 서당 설립을 억제, 민족 교육에 대한 통제
독립운동 탄압: 105인 사건(1911)-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모의 사건을 조작해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그중 105인을 기소한 사건
2) 1910년대 일제의 경제 수탈
1. 토지 조사 사업: 근대적 토지 소유권 확립과 지세 확보를 명분으로 실시하였으나 실상은 안정적인 지세 확보와 조선인 토지 약탈, 조선인 지주층을 회유하기 위함이었다.
토지 조사령 공포(1912)
기한부 신고제: 지정된 짧은 기간 안에 서류를 구비하여 신고해야 소유권이 인정됨
결과
토지의 약탈: 미신고 토지, 마을이나 문중의 공유지를 약탈해 총독부에 귀속
토지의 불하: 수탈한 토지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통해 일본인에게 싼 값에 불하됨
농민의 몰락: 농민은 토지 소유권만이 아닌 관습상 인정되던 경작권까지 부정당함, 이후 소작농으로 전락
농민의 유민화: 일부 농민은 화전민이 되거나 만주, 연해주 등지로 이주함
2. 산업 침탈
회사령 제정(1910): 민족 기업의 성장을 억압하기 위해 실시함, 회사 설립을 총독의 허가제로 하며, 회사의 해산 또한 총독이 명할 수 있게 규정
전매제: 인삼, 소금, 담배 등을 총독부가 전매함
조선 광업령(1915): 광업권에 대한 허가제 실시, 지하자원 약탈 및 경제성 있는 광산 독접
이외 조선 어업령(1911), 삼림령(1911), 임야 조사령(1918) 등을 제정해 자원 침탈
2. 1910년대의 독립운동
1) 국내의 독립운동
일제가 안악 사건, 105인 사건 등을 통해 민족 인사 탄압과 독립 운동에 대한 색출과 공세를 강화하자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비밀 결사 형태의 독립운동을 전개
독립 운동 단체
1. 독립 의군부: 고종의 비밀 지시에 따라 임병찬이 의병장과 유생들을 규합해 조직, 복벽주의(왕정복고)를 표방, 총독부와 일본 정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보내려다 실패함
2. 대한 광복회: 박성진, 김좌진 등이 조직, 공화 정체의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결성된 군사 조직.
2) 국외의 독립운동
1. 특징
항일 독립운동 기지 건설: 간도와 연해주 등에 항일 독립운동 기지 건설
무장 독립 전쟁 수행: 근대적 민족 교육과 군사 훈련 실시
2. 간도
서간도
경학사: 이회영, 이시영 등 신민회 계열이 삼원보에 설립한 최초의 자치 단체, 신흥 강습소 설치
서로 군정서: 군정부 기능, 상하이 임시 정부와 연합해 한족회가 조직함
북간도
중광단: 무오 독립 선언서 발표, 이후 김좌진 중심의 북로 군정서로 확대 개편됨
서전저숙, 명동학교: 서전서숙(이상설), 명동학교(김약연)
3. 연해주
13도 의군: 유생 의병장 유인석 중심의 항일 의병 부대
권업회: 의병 계열과 애국 계몽 계열이 합작하여 신한촌(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한인 집단촌)에 조직한 자치기관, 권업신문 발행
대한 광복군 정부: 권업회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수립한 정부, 무장 독립 투쟁을 준비함.
4. 상하이: 여운형을 당수로 신한청년당 조직,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 을 파견
5. 미주 지역
대한인 국민회: 안창호, 이승만, 박용만 등이 설립한 단체, 독립운동 자금으로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외교 활동을 전개함.
흥사단: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 창립한 조직
대조선 국민 군단: 박용만이 하와이에 조직한 단체, 군사 훈련 실시
숭무 학교: 멕시코에 설립된 학교, 독립군 양성
3.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1) 3.1 운동(1919)
1. 배경
국제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월슨이 민족 자결주의 제창
무오 독립 선언(만주), 2.8 독립 선언(도쿄 유학생) 발표
신한청년당이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함
국내: 고종의 죽음에 일제가 연관되었다는 독살설 유포
2. 준비 및 전개 과정
천도교에서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화의 3대 행동 원칙 확립, 기독교 불교와 연합하고 학생세력이 동참해 민족 대연합 전선 구축
전개 과정
독립 선언서 작성: 최남선이 본문 작성+한용운이 공약 3장을 덧붙임, 민족 대표 33인이 서명, 종교 교단 중심으로 배포
탑골 공원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이 독립 선언서 낭독한 후 만세 시위 전개
이후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만세 시위 확산,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가하며 농촌으로도 확산 됨
일제의 탄압: 일제는 헌병과 경찰, 육, 해군까지 동원해 만세 시위를 전개하는 군중에게 총격을 가하며 탄압(제암리 학살 사건, 유관순 열사 등)
3. 의의와 영향
3.1 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며, 일제의 통치 방식이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됨
2) 대한민국 임시 정부
1. 각지에서 임시 정부 수립: 3.1 운동 이후 연해주에서 대한 국민 의회, 상하이의 임시 정부, 서울에 한성 정부 수립
2. 통합된 임시 정부 수립(1919.9) 조직적, 체계적 독립운동 추진 필요, 상하이에 3권 분립에 입각한 임시 정부 수립(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3. 임시 정부의 활동(1919~1923)
비밀 행정 조직
연통제: 국내외를 연결하는 비밀 행정 기관, 군자금 송금 등 업무 담당
교통국: 국내외의 연락을 담당하는 통신 기관, 정보 수집 등의 업무 담당
군자금 조달
독립 공채(애국 공채) 발행, 국민 의연금 모금 운동>군자금 마련
이륭양행(만주 단둥) 등을 통해 군자금 전달
외교 활동
김규식을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 이승만이 미국에 구미 위원부 설치
문화 활동
기간지로 독립신문 간행
사료 편찬소 설치, 안창호 중심으로 한일관계사료집 편찬
군사 활동
광복군 사령부
4. 국민 대표 회의(1923)
독립운동 노선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 창조파, 개조파, 현상 유지파로 분화됨
결과: 독립운동 세력의 이탈로 임시 정부의 활동이 침체됨
5. 1930년 이후 임시 정부의 주요 활동
한인 애국단 조직(1931): 임시 정부의 침체 극복을 위해 김구가 조직
한국 광복군 창설(1940): 한국 광복군을 창설해 연합군의 일원으로 태평양 전쟁 참전
건국 강령 발표(1941): 조소앙의 삼균주의(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균등)를 바탕으로 건국 강령 발표
4. 문화 통치와 산미 증식 계획
1) 문화 통치(1920년대)
3.1 운동 이후 일본은 문화 통치를 실시함
문화 통치의 성격: 친일파를 양성하여 우리 민족을 분열 시키고 이간을 유도함
문화 통치의 방침과 실상
경찰제도: 헌병 경찰 제도에서 보통 경찰 제도로 전환
언론 정책: 한국인의 신문 발행 허용> 검열, 기사 삭제 자행
지방 행정책: 도 평의회, 부, 면 협의회 설치, 지방 행정에 조선인 참여 허용> 친일파와 자산가만 참여
교육 정책> 한국인의 교육령 보장한다는 제2차 교육령 시행> 경성 제국 대학 설립(1924)
치안 유지법 제정(1925): 식민 체제를 부인하는 반정부, 반체제 운동이나 사회주의 세력 탄압
기타: 착검, 태형 폐지, 한국인 관리 임명, 식민 사관 정립
문화 통치의 영향: 일본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치권을 얻자는 자치론 주장(이광수, 최린)
3) 1920년대의 일제의 경제 수탈
1. 산미 증식 계획
일제는 조선의 쌀 수획량을 늘려 수탈하고자 함
목표량보다 증산량이 미달하였음에도 계획대로 쌀 반출
결과: 국내 식량의 부족, 잡곡 수입의 증가
국내의 빈약한 식량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만주에서 잡곡을 수입해 연명
농민의 몰락: 쌀 증산에 소요되는 비용을 소작농에게 전가> 많은 농민이 몰락
쌀 중심의 농업 구조 형성: 단작형 농업 구조
2. 산업 침탈
회사령 철폐(1920): 일본 자본이 조선에 대거 유입되도록 회사 설립을 신고제로 변경
관세 철폐(1923): 일본 상품에 대해서는 관세 철폐, 국내 기업 타격
5. 1920년대의 무장 투쟁 운동
1) 1920년대 독립군의 활약
1. 만주 지역 독립군의 활동
북간도: 김좌진 중심의 북로 군정서,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
2. 봉오동 전투: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을 중심으로 군무 도독부군, 국민회군이 연합해 두만강 인근에서 일본군과 싸워 이김
3. 청산리 전투(1920.10)
일본이 봉오동 전투에 대한 보복을 위해 훈춘 사건을 조작함
북로 군정서군(김좌진, 이범석)을 비롯한 독립군들이 연합해 백운평, 어랑촌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며 일본군 격퇴
2) 독립군의 시련과 재정비
간도 참변(1920.10):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패배에 대한 일제의 보복
대한 독립 군단 결성(1920): 일제의 공세를 피해 독립군이 밀산부에 집결함
자유시 참변(1921): 대한 독립 군단이 소련 자유시로 이동하였으나 소련 적색군에 의해 수많은 독립군이 희생당함
3부의 성립(1923~1925): 자유시 참변 이후 독립군은 군사조직과 행정조직을 모두 갖춘 육군 주만 참의부(1923), 정의부(1924), 신민부(1925)의 3부 성립
3부 통합 운동: 독립운동 전선의 통일을 위해 3부 통합 운동이 추진됨
혁신의회(북만주): 김좌진, 지청천, 김동삼 등을 중심으로 조직됨, 한국 독립당과 한국 독립군 결성
국민부(남만주): 양세봉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민부는 조선 혁명당과 조선 혁명군을 결성함
6. 1920년대의 국내 민족 운동
1) 물산 장려 운동
회사령 폐지(1920)로 일본 대기업이 조선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관세 철폐의 움직임이 이루어지자 조선인 기업가들의 위기의식 고조
평양에서 조만식을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 조직, 이후 전국으로 확산
내 살림 내것으로, 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 등의 구호 외침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부르주아)와 상인이 이익만 도모하는 운동이라고 비판
2) 민족 교육 운동
제2차 조선 교육령 공포되며 일제의 교육에 대한 탄압이 완화됨
1. 민립 대학 설립 운동(1920년대 초반)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1922)조직,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이란 구호로 모금 운동 전개
일제는 회유책으로 경성 제국 대학을 설립(1924)
2. 문맹 퇴치 운동(1920년대 후반~1930년대)
문자 보급 운동: 조선일보의 주도로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는 표어 아래 전개됨
브나로드 운동: 동아일보의 주도로 '배우자! 가르치자! 다함께! 브나로드!'라는 표어 아래 전개됨
3) 사회적 민족 운동
1. 농민, 노동 운동
1920년대
농민운동: 암태도 소작 쟁의(1923)
노동 운동: 조선 노동동맹(1927)이 조직적인 쟁의 전개, 원산 노동자 총파업(1929)
1930년대
사회주의와 연계한 농민, 노동 운동 전개
2. 소년, 여성 운동
소년 운동: 어린이날 제정, 소년 잡지 <어린이>를 간행(방정환)
여성 운동: 근우회 조직(1927)
3. 형평 운동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 백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여전히 존재함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이학산)이 결성되어 신분 해방 운동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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